연명치료와 존엄사, 제도와 현실 사이의 간극

< 일러스트 OpenAI의 DALL·E 제공 >

[객원 에디터 10기 / 최서연 기자] 의학은 끊임없이 발전해왔다. 과거에는 치료가 불가능했던 질병도 이제는 관리가 가능해졌고, 생명이 위태로운 순간에도 다양한 의료 장치를 통해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인간은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다. 그 과정에서 최근 사회적으로 중요한 논쟁이 되고 있는 주제가 바로 ‘연명치료’와 ‘존엄사’다.

연명치료란 회복 가능성이 거의 없는 환자에게 의료적 처치를 통해 생명을 일시적으로 연장하는 치료를 말한다. 인공호흡기 부착,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고강도 항암치료 등이 이에 해당한다. 반면 존엄사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며 삶을 마무리하는 선택을 의미한다. 이는 적극적으로 생명을 단축하는 행위가 아니라 더 이상의 의학적 연장을 멈추는 결정에 가깝다. 이 두 개념은 단순히 의학적 문제가 아니라 생명과 선택, 가족의 책임까지 얽혀 있는 사회적 문제다.

연명치료 논의를 바꾼 ‘김 할머니 사건’

연명치료 논의를 본격적으로 공론화한 대표적인 사건이 있다. 2008년 발생한 이른바 ‘김 할머니 사건’이다.

76세였던 김 할머니는 폐암 검사를 받던 중 갑작스럽게 의식을 잃고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다.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가족들은 평소 고인이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인공호흡기 제거를 요청했다. 그러나 병원 측은 환자 본인의 명확한 의사 확인이 어렵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결국 가족과 병원은 법적 다툼에 들어갔고, 대법원은 “환자가 회복 불가능한 사망 단계에 진입하였고,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의사를 추정할 수 있는 경우에는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연명치료 중단의 법적 가능성을 인정한 사례였다. 이후 연명치료와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본격화되었고, 제도 마련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2018년 시행된 ‘연명의료결정제도’

이러한 논의의 결과로 2018년 2월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었다. 이 제도는 말기 환자나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연명치료 여부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19세 이상의 성인은 사전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거나 의료기관에서 ‘연명의료계획서’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공식적으로 남길 수 있다. 만약 환자가 의사 표현이 불가능한 상태이고 사전 문서가 없다면 가족 2인 이상이 환자의 평소 의사를 동일하게 진술할 경우 이를 존중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성년자의 경우에는 친권자나 가족 전원의 합의를 통해 결정할 수 있다.

이 제도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여전히 다양한 현실적 어려움이 존재한다.

“거부는 많지만, 실제 중단은 적다”

2025년 한국은행은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원과 공동으로 수행한 연구를 바탕으로 「BOK 이슈노트: 연명의료, 누구의 선택인가」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층의 84.1%는 “회복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의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실제 연명의료 중단 비율은 16.7%에 그쳤다. 즉, 다수는 존엄한 마무리를 원한다고 답했지만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임종 직전까지 인공호흡기나 투석 등 연명치료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다.

일부 보도에서는 실제 연명의료 중단이 이행된 환자 중 약 40%가 사망 이틀 전에야 시술이 중단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는 환자의 의사와 실제 치료 과정 사이에 시간적 간극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그 이유는 복합적이다. 의료진은 혹시 모를 법적 책임과 윤리적 판단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며, 가족들은 치료 중단 결정에 대한 심리적 부담을 느낄 수 있다.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예측하는 일 또한 쉽지 않다. 이러한 이유로 제도는 존재하지만 실제 임종의 순간에는 여러 현실적 요소가 작용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편 스위스를 비롯한 일부 유럽 국가는 일정 조건 아래 존엄사나 조력 사망을 허용하고 있다.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보다 폭넓게 인정하는 제도적 환경이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은 적극적 안락사는 허용하지 않으며 연명치료 중단에 한해서만 법적 근거를 두고 있다. 생명 보호라는 가치와 개인의 선택권 사이에서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는 구조다. 이러한 차이는 한국 사회에서 존엄사에 대한 논의가 계속 이어지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한국 사회에서 연명치료 문제는 앞으로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평균 수명이 늘어난 만큼 삶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결정도 더 자주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시행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관련 제도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사전의향서를 작성하는 비율도 전체 인구에 비하면 높지 않은 수준이다.

연명치료와 존엄사 논의는 단순히 생명을 연장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환자의 고통, 가족의 부담, 의료진의 책임,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까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84%와 16%라는 수치는 우리 사회가 여전히 선택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안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도가 마련된 지금, 그 제도가 실제 삶의 마지막 순간에 얼마나 반영되고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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