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란 무엇일까?
< 일러스트 Google Gemini 제공 >
[위즈덤 아고라 / 이은율 기자] 트라우마는 너무 큰 충격이나 두려운 일을 겪었을 때, 그 경험이 마음에 깊은 상처로 남아 계속 영향을 주는 상태이다. 트라우마는 단일 사건부터 반복적, 복합적인 경험에서 까지 다양하게 나타나며,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PTSD 기준에 해당하는 반응을 보이지만, 치료를 요하지 않을 정도의 일시적 불편이나, 오히려 회복력을 드러내는 사례도 있다. 즉, 트라우마는 ‘비정상적 상황에 대한 정상적 반응’이며, 개인의 성격과 사건의 맥락, 다양한 사회적 요인이 회복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
또한 일부 트라우마 경험자의 경우 심각한 고통 속에서도 새로운 성장의 의미를 찾아가는 트라우마 후 성장(Post Traumatic Growth) 개념이 발견되기도 한다. PTG는 단순히 트라우마 이전의 상태로 회복되는 것이 아닌 트라우마를 겪은 계기를 기회로 가치관을 재정립하거나 다양한 관계의 깊이 그리고 삶의 우선순위 등을 생각하는 것과 같이 큰 변화를 통해서 더 성숙한 상태로 삶을 이어 나가는 과정을 설명한다. 이는 개인이 트라우마에 압도당하는 것만이 아니라 때로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내적 심리를 강화하고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하버드 의대 교수인 주디스 루이스 허먼(Judith Lewis Herman)의 저서 Trauma and Recovery (1992)에서 대표적인 트라우마 치료의 3단계 모델을 찾아볼 수 있다. 허먼의 회복 모델은 트라우마 극복을 위해 안전 확보 > 기억 재구성 > 사회적 관계 회복의 세 단계를 거치는 것이 핵심이다. 이런 단계적 접근은 상담과 심리치료에서 구조화된 치유 여정을 제시하며, 외상으로부터 안정과 자아 회복을 돕는 중요한 틀을 제공한다.
최근 트라우마 치료 연구로는 전통적인 상담 그리고 인지행동치료 외에도 새롭게 도입 시도 중인 가상현실(VR) 기반 노출 치료가 인기를 끌고 있다. 가상현실 노출치료는 실제 상황을 안전하게 가상현실 세계에 재현해서 뇌를 자연스럽게 그 상황에 노출해, 그 노출 기반의 처리를 살펴보며 자극을 주고 트라우마와 회복력의 재통합을 돕는 접근 방식을 사용한다. 이 방식은 응급구조 대원, 전투원, 다양한 PTSD 환자들 그룹에서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으며 그들에게서 트라우마 증상 감소와 대응 기능 개선을 보고한 연구들이 나오고 있다. 가상현실은 상황 재현 방법의 유연성과 원격진료(Telemedicine) 적용 가능성 때문에 임상현장 확장성은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장기적인 효과 아니면 성과에 관한 추가적인 연구가 더 필요해 보인다.
트라우마는 단순히 개인의 약함이나 의지 부족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뇌와 신경계, 그리고 사회적 맥락이 얽혀 있는 복합적인 심리적·생물학적 반응이다. NCBI의 연구인 NBK207191에서는 트라우마 경험이 신경생물학적 수준에서 기억, 감정 조절, 스트레스 반응 체계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고 설명한다. 즉, 충격적 사건이 뇌의 편도체, 해마, 전전두엽 기능을 변화시켜 불안, 과각성, 회피 같은 PTSD 증상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고정된 손상이 아니라, 적절한 치료와 환경적 지원을 통해 회복될 수 있는 가소성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후성유전학이라는 연구에서 개인에게 있었던 트라우마가 단순히 한 개인의 세계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닌, 세포 수준의 유전자 발현 쪽에서의 조절을 통해 다음 세대에게도 그 트라우마의 흔적이 전해질 수 있음이 발표되었다. 그러므로, 부모 세대의 트라우마 경험이 자녀의 스트레스 반응이나 감정 조절 방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트라우마가 개인적인 사건을 넘어선, 다음 세대한테 큰 사회적 영향을 장기적으로 미칠 수 있음을 알린다.
또한 국제 학술지에 실린 정신건강 연구에 따르면, 트라우마의 영향은 개인마다 다르게 나타나는데 이는 사회적·문화적 맥락과 깊이 관련된다. 같은 사건을 경험해도 어떤 사람은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을 겪는 반면, 어떤 사람은 회복력(resilience)을 발휘해 오히려 성장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는 트라우마가 단순히 사건 자체 때문이 아니라 개인의 성격적 자원, 사회적 지지, 문화적 해석 구조 등 다양한 요인 속에서 결과가 달라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최근 Nature에 발표된 연구 s41598-025-91819-x는 뇌영상 기법을 통해 트라우마 환자의 뇌 연결망 변화를 실증적으로 밝혔다. 특히 외상 경험이 정서 조절과 기억 처리와 관련된 신경회로를 변화시키며, 이런 변화가 PTSD 증상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치료적 개입을 통해 뇌 기능이 다시 정상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강조했다. 이는 트라우마가 단순한 ‘상처’가 아니라 뇌에서 마음, 그리고 사회로 이어지며 함께 치유할 수 있는 ‘회복 가능한 경험’임을 보여준다.
우리나라도 세월호 참사(2014) 나 이태원 압사 참사(2022)처럼 많은 사람이 트라우마를 겪은 사건들이 있다. 이런 사건들은 직접적인 피해자와 유가족만 트라우마에 걸리는 것이 아닌 사건을 지켜본 국민 전체에게 심리적인 충격을 주며 사회 전반에 트라우마와 불안을 남겼다. 특히 세월호 사건에는 ‘국가와 사회가 안전을 지켜주지 못했다’라는 말이 커지며 그 불안은 더 커졌다. 이는 시간이 흘러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불신과 집단적 상처로 자리 잡고야 말았고 아직 많은 사람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하지만 동시에 피해자 유족들과 국민이 함께 애도하며 목소리를 내는 과정은 집단적 트라우마가 집단적 치유 단계로 발전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는 하먼의 모델에서도 말하는 사회적 관계 회복이 개인에게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닌 공동체 차원에서도 필요하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과학적 발견들은 허먼의 3단계 회복 모델과도 깊게 맞닿아 있다. 허먼은 안전 확보(safety), 기억 재구성(remembrance), 사회적 연결(reconnection)이라는 단계적 치유 과정을 제시했는데, 이는 생물학적 안정, 심리적 통합, 사회적 지지라는 측면에서 최신 연구와 유사하다. 즉, 신경생물학적 손상을 회복시키는 안전한 환경, 사건을 이야기로 재구성하여 기억을 재통합하는 과정, 사회적 관계 속에서 다시 자신을 확인하는 단계는 모두 과학과 임상 현장에서 입증된 치유의 핵심 원리다. 따라서 트라우마 회복은 개인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안전과 지지를 보장할 때 비로소 완전한 치유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트라우마는 개인의 경험을 넘어 뇌, 세대, 사회를 관통하는 현상이다. 따라서 회복은 개인적 노력만으로 이뤄지지 않으며, 정책적 안전망과 문화적 지지가 함께 뒷받침될 때 가능하다. 트라우마 치유는 사회 전체의 과제로 이해되어야 한다.
[위즈덤 네이처] 상담심리학은 인간이 겪는 정서적 어려움, 관계의 갈등, 그리고 삶의 방향에 대한 혼란을 이해하고 돕는 학문이자 실천 분야입니다. 최근 ‘멘털 케어’라는 말이 뉴스와 SNS에서 자주 등장하며,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진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상담과 심리치료를 통해 그 깊이를 들여다보고 치유할 수 있습니다. 각자의 성장 배경과 경험 속에서 형성된 생각과 감정을 이해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비롯해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바꿀 수 있습니다. 위즈덤 아고라 이은율 기자의 ‘위즈덤 네이처’와 함께, 당신의 내면을 마주하는 조용한 여행을 시작해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