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OpenAI의 DALL·E 제공 >
시진핑, 안정성과 상호 번영 강조하며 5천억 달러 넘는 무역 규모 달성…미국 관세 정책의 반사이익 노려
[객원 에디터 9기 / 강세준 기자] 최근 들어 중국과 중남미 국가 간의 경제·기술 협력 관계가 뚜렷하게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양자 간 교역 확대를 넘어, 글로벌 지정학적 질서 재편 속 중국의 전략적 의도와 결부된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본 기사는 중국의 대(對) 라틴아메리카 전략을 중심으로, 최근 급변하는 국제 환경 속에서 무역과 기술 협력의 실질적 변화, 일대일로(BRI) 전략의 중남미 확장, 글로벌 남방 연대의 진전, 그리고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에 대한 구조적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그 정치경제적 의미를 고찰하고자 한다.
21세기 초반까지 중남미는 미국의 전략적 후방이자, 주로 북미 및 유럽 경제권에 의존하는 지역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2010년대 후반부터 중국의 영향력이 아프리카, 동남아시아를 넘어 중남미로까지 확장되기 시작하면서, 이 지역은 점차 다극화된 글로벌 경제 구조의 일환으로 재편되고 있다. 특히 미중 간 경제 및 안보 갈등이 심화되면서, 양국은 제3세계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영향권 다툼에 착수하게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중남미는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접점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중국은 해당 지역에서 단순한 경제 파트너를 넘어 ‘공동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전략적 동반자’로 자리매김하려 하고 있다. 이는 곧, 기존 미국 주도의 해양패권 중심 질서에 균열을 가하고자 하는 중국의 광범위한 외교 전략의 일부로 볼 수 있다.
2024년을 기준으로 중국과 라틴아메리카 간 연간 교역 규모는 5,000억 달러를 넘어섰으며, 이는 양자 간 무역이 단순한 수출입 관계를 넘어 장기적인 경제 연계성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먼저, 주요 자원 수출국인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등은 자국 농산물 및 광물 자원의 주요 수출처로 중국을 선택함으로써 미국 중심의 공급망에서 점차 이탈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고관세 정책 및 자국 산업 보호주의 기조에 실망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중국을 ‘대안적 경제 파트너’로 삼고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중국은 이를 기회 삼아 장기 공급 계약, 농업 기술 지원, 대규모 수입 쿼터 등 다각적 수단을 활용해 교역 파트너국의 경제 생태계에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은 자원 외교(resource diplomacy)의 고도화된 형태라 할 수 있으며, 중국의 전략적 경제 기획의 일환으로 분석된다.
교역 확대와 더불어 주목할 만한 점은 기술 및 인프라 분야에서의 심화된 협력이다. 중국은 일대일로(BRI) 전략의 외연을 아시아·아프리카를 넘어 라틴아메리카로까지 확장하고 있으며, 이는 전통적인 해상 실크로드의 공간적 개념을 초월하는 전략적 확장으로 평가된다. 에콰도르와 파나마를 포함한 여러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현재 중국 국영 기업들과 대규모 철도, 항만, 전력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그 규모와 범위는 2000년대 초반의 미국 ODA 중심 개발 협력과 비교했을 때 훨씬 더 구조적이고 장기적이다. 특히 디지털 경제, 인공지능(AI), 클린 에너지, 위성통신 등의 첨단 기술 분야에서 중국은 ‘개발도상국 간 과학기술 협력’이라는 이름으로 공동 연구센터 설립, 인재 파견, 기술이전 프로그램 등을 운영 중이다. 이는 단순한 자본 투입을 넘어, 기술 주권과 디지털 인프라 구축의 주도권까지 확보하려는 의도를 반영하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최근 라틴아메리카 정상들과의 회담에서 “중남미는 단순한 시장이 아니라, 중국과 함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전략적 파트너”라는 발언을 통해 기존의 ‘중국-남미 무역 관계’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였다. 이는 단지 경제적 실익을 넘어 지정학적 정렬의 변화를 꾀하는 전략적 수사로 해석될 수 있다.
중국은 이 지역과의 협력을 통해 기존 미국 주도의 규범 질서와 가치 중심 외교에 도전하며, ‘발전권(right to develop)’과 ‘비간섭 원칙(non-interference)’을 내세운 대안적 국제관계를 구축하려 하고 있다. 실제로, 라틴아메리카 다수 국가는 미국의 대이민 정책, 경제 제재, 민주주의 개입 논리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으며, 이에 대한 대안으로 중국의 실용주의적 접근을 환영하고 있다. CNBC, Reuters 등 서방 언론은 이러한 중국의 접근을 단순한 경제 협력을 넘어 ‘정치적 진입(political penetration)’으로 규정하며, 장기적으로는 미국과 중국 간 신냉전 구도의 또 다른 전장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양적·질적 협력이 실제로 얼마나 지속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첫째, 중남미 다수 국가는 정치적으로 극도의 불안정성을 보이고 있으며, 정권 교체 시 외교 노선이 급변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는 중국 입장에서도 중장기적 경제·기술 협력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 장애 요인으로 작용한다. 둘째, 일부 국가에서는 중국의 자본 및 기술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경제적 종속’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으며, 사회시민단체 및 야당을 중심으로 반중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 셋째, 미국은 여전히 군사력, 금융 시스템, 다자기구 지배력 등 구조적 우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를 활용해 중남미에 대한 전략적 견제를 가속화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은 중남미 국가에 대한 투자 보장 프로그램, 기술 연합, 민주주의 정상회의 등을 통해 중국 견제에 나서고 있으며, 이는 양국 간 협력의 제도화를 어렵게 만드는 외부 변수로 작용한다.
결국 중국의 대(對) 라틴아메리카 전략은 국제정치경제 질서 전반에 대한 구조적 도전이다. 중국은 이 지역을 통해 미국 중심의 무역과 금융 시스템을 우회하고, 자신이 주도하는 대안적 국제 질서의 실험장을 마련하고자 한다. 이러한 전략은 교육, 기술, 규범 등의 근본적 구조를 재편하고자 하는 장기적 전략의 일환이다. 향후 중남미가 중국의 협력 제안을 수용하는 방식과 범위는 글로벌 거버넌스 구조의 미래까지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변수로 부상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