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우주의 4단계 이론과 시뮬레이션 가설
[객원 에디터 9기 / 김지수 기자] 우리가 사는 이 우주 너머에도 또 다른 ‘나’가 존재하는 세계가 있을까?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주인공은 과거의 선택에 따라 생성된 수많은 ‘멀티버스’를 넘나들며,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또 다른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영화 속 허구처럼 보이는 이 설정은, 사실 오늘날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는 과학적 개념, ‘다중우주(multiverse)’ 이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다중우주론’이란, 우리가 속한 이 우주 외에도 수없이 많은 우주가 존재하며, 우리가 사는 우주는 그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이론이다. 이는 공상과학(SF) 영화나 소설에서 자주 다뤄지는 흥미로운 주제지만, 실험이나 검증이 어려운 만큼 다양한 이론이 제기되고 있다. MIT의 이론천문학자 맥스 테그마크 교수는 이러한 다중우주를 네 가지 단계로 나누어 설명했다.
1단계 다중우주는 우리가 관측할 수 없는 우주의 바깥, 즉 우주의 외연을 의미한다. 빅뱅 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탄생 직후 1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인플레이션’이라 불리는 급격한 팽창 과정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현재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우주보다 훨씬 더 거대한 공간이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현대 우주론이 옳다면, 이러한 형태의 다중우주는 실제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여겨진다.
2단계는 ‘인플레이션 다중우주’로,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그 존재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 이론에 따르면, 우리 우주가 인플레이션 과정을 통해 형성된 것처럼, 다른 공간에서도 동일한 팽창이 무수히 반복되며 각각 고유한 우주가 계속해서 생성된다고 본다. 이때 새롭게 만들어지는 우주들은 우리 우주와 전혀 다른 물리적 성질을 가지며, 이 모든 우주가 거대한 다중우주 체계 안에 포함된다는 주장이다.

3단계는 양자역학에서 유래된 ‘양자 다중우주’ 이론이다. 이는 ‘평행우주’ 개념과 비슷하며, 우리가 매 순간 내리는 선택에 따라 새로운 우주가 생성된다고 본다. 이들 우주는 서로 중첩된 상태로 존재하지만,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받지는 않는다. 대표적인 예가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이다. 고양이가 들어 있는 상자 안에는 분열 가능성이 50%인 원자핵이 있으며, 원자핵이 분열되면 독가스가 방출된다. 한 시간 후 고양이가 살아 있을 확률과 죽어 있을 확률이 각각 50%이고, 이는 곧 살아 있는 고양이와 죽은 고양이가 각각 존재하는 두 개의 평행우주가 형성된다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가장 추상적인 형태인 4단계 다중우주는 ‘수학적 다중우주’ 이론이다. 이 가설은 우리가 사는 이 우주뿐만 아니라 존재 가능한 모든 우주가 수학적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모든 것이 수학적 법칙에 따라 작동한다고 본다. 그러나 이 가설은 현재로서는 검증이나 반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과학적 이론이라기보다는 철학적 주장에 가깝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한편, 다중우주론과 별개로 ‘시뮬레이션 가설’도 흥미로운 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 이론은 고도로 발달한 문명이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현실과 구분할 수 없는 가상세계를 만들어냈고, 우리가 사는 세계 역시 그런 가상현실일 수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영화 <매트릭스>의 세계관을 떠올리게 하는 이 가설은 일부 과학자나 기술자들 사이에서 지지를 받고 있다. 이 시뮬레이션 가설을 4단계의 ‘수학적 다중우주’와 동일시하는 경우도 있지만, 정작 이론을 처음 제안한 맥스 테그마크 교수는 수학적 다중우주의 관점에서 봤을 때 시뮬레이션 우주는 논리적으로 성립하기 어렵고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많은 과학자들이 다중우주론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있어가고 있지만, 이 이론은 관측이 불가능하고 우리 우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전히 회의적인 시선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의 발전과 이론적 탐구가 계속된다면, 인류는 지금까지 상상에 머물렀던 다중우주의 실체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치 한때 불가능해 보였던 달 착륙이 현실이 되었듯, 먼 미래에는 다른 우주의 ‘나’를 만나는 일이 실제로 가능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