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와 ‘웨이팅 문화’, 문화적 성향의 두 가지 속도
< Illustration by Yeryeong Yu(유예령) >
[객원 에디터 11기 / 노은진 기자]한국에서는 요즘 인기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줄 서기’가 일상이다. 맛집과 카페는 물론 전시관, 한정판 굿즈, 화장품 매장 앞까지 입소문만 나면 긴 행렬이 이어진다. 심지어 매장 문을 열기 전부터 기다리는 ‘오픈런’은 이제 생소하지 않은 풍경이 됐다.
이러한 긴 대기 시간을 뜻하는 웨이팅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대기줄이 길다는 것은 서비스나 제품이 인기가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한정된 상품이나 특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 이러한 기다림은 소비자의 기대감을 증폭시켜 더 큰 만족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특히 애플 아이폰이 출시될 때 길게 늘어선 줄은 희소성과 트렌드 리더십이 강조돼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기여하며, 소비자는 서비스나 제품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되는 심리적 효과가 발생한다.
즉, ‘기다림=희소성’이라는 공식이 성립하며 대기 시간 자체가 일종의 소비 대상이 된 셈이다.
사실 긴 대기 시간은 고객 서비스 측면에서 부정적인 요소로 통한다. 일행과 대화하는 시간도 잠깐일 뿐, 1시간 남짓의 시간이 흘러가면 뻐근해진 다리와 함께 줄어드는 속도에만 온 신경이 곤두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다림을 기꺼이 감수하는 이유는 다수가 경험한 성공을 나도 누려보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다.
또한 일반적으로 줄서기, 긴 대기 시간은 효율성이 떨어지며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와는 맞지 않는 모습으로 보인다. 특히 ‘자장면이 맛없는 건 용서해도 늦게 나오는 건 못 참는다’는 한국인의 ‘빨리빨리’ 성미를 생각하면 더욱 의아하다. 자판기 커피가 채 나오기도 전에 컵을 빼내고, 버스가 멈추기 전부터 문 앞으로 몰려가는 우리에게 ‘기다림’은 본래 비효율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트렌드는 한국의 MZ 세대(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의 가치관과 관련이 있다. 이들 세대의 특징은 소비와 경험에서 독특한 가치를 추구하며 웨이팅을 단순한 기다림 이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한정판’과 ‘독점적’인 것에 큰 가치를 둔다. 웨이팅이 길수록, 희소성이 높을수록 그 서비스나 제품이 특별해져 더욱 갈망하게 된다.
웨이팅은 순서대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원칙이 통하는 상황에서 나의 오랜 시간 투자를 통해 얻어낸 일종의 결과물이므로 이를 인증샷과 함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자랑하기도 한다.
“나는 이런 특별한 것을 경험했다”는 훌륭한 SNS 스토리가 된다. 단순히 제품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얻는 과정을 경험으로 인식하면서 줄 서서 기다리는 것도 새로운 콘텐츠가 되는 것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 트렌디한 것을 탐구하는 세대들에게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결국 웨이팅 열풍은 다수의 소비자가 선택한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편승 효과(Bandwagon Effect)’의 얼굴을 하고 있다.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면 왜 인기가 많은지 호기심이 발동하고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SNS에서 ‘최고의 기다림’이라는 역설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특정 장소를 추천하곤 한다. 이는 기다림의 시간이 그 장소의 인기나 방문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