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즈덤 아고라 / 우성훈 기자] 우리는 보통 질병을 치료하는 약이 특정 단백질의 기능을 억제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많은 약물들은 질병을 일으키는 단백질의 활성 부위에 결합해 그 기능을 막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만약 단순히 기능을 막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되는 단백질 자체를 세포에서 제거할 수 있다면 어떨까? 최근 의약화학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는 PROTAC은 바로 이러한 생각에서 출발한 기술이다. PROTAC은 질병을 일으키는 단백질을 세포 속에서 직접 분해하도록 유도하는 분자 설계 전략으로 차세대 신약 개발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먼저 단백질이 어떻게 분해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세포는 불필요하거나 손상된 단백질을 계속 축적하지 않는다. 대신 유비퀴틴이라는 작은 단백질을 표적으로 붙여 제거 대상으로 표시한다. 마치 택배 상자에 배송 라벨을 붙이는 것처럼 유비퀴틴이 여러 개 붙으면 세포는 그 단백질을 분해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한다. 이후 프로테아좀이라는 거대한 단백질 분해 장치가 해당 단백질을 잘게 분해한다. 이를 유비퀴틴-프로테아좀 시스템이라고 부른다.
PROTAC은 바로 이 시스템을 이용한다. PROTAC 분자는 두 개의 손을 가진 분자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한쪽은 제거하고 싶은 질병 관련 단백질을 붙잡고 다른 한쪽은 E3 유비퀴틴 연결효소를 붙잡는다. 그리고 가운데 연결체가 이 둘을 이어준다. 결과적으로 질병 단백질과 E3 효소가 가까워지면서 유비퀴틴이 질병 단백질에 붙게 되고 결국 프로테아좀에 의해 분해된다. 즉 PROTAC은 단백질의 기능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단백질 자체를 세포에서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기존 약물과 비교했을 때 큰 장점을 가진다. 일반적인 저분자 약물은 단백질의 특정 활성 부위에 결합해야 하지만 많은 단백질은 뚜렷한 활성 부위가 없어 약물 개발이 어렵다. 이를 흔히 ‘undruggable target’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PROTAC은 단순히 표적 단백질에 결합만 할 수 있다면 분해를 유도할 수 있기 때문에 기존에 치료가 어려웠던 단백질도 표적으로 삼을 수 있다. 또한 하나의 PROTAC 분자는 여러 개의 표적 단백질 분해를 반복적으로 유도할 수 있어 적은 양으로도 효과를 낼 가능성이 있다.
PROTAC의 성능을 결정하는 핵심은 분자 설계다. 표적 단백질에 결합하는 부분과 E3 효소에 결합하는 부분이 아무리 좋아도 두 부분을 연결하는 연결체의 길이와 구조가 적절하지 않으면 분해 효율이 크게 떨어진다. 이는 두 사람이 악수해야 하는데 팔 길이가 너무 짧거나 너무 긴 것과 비슷하다. 실제로 제약회사들은 연결체 길이를 원자 몇 개 차이까지 조절하며 최적의 구조를 찾는다. 최근에는 컴퓨터 모델링과 인공지능을 이용해 어떤 구조가 가장 효율적으로 단백질 분해를 유도하는지 예측하는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최근 가장 주목받은 연구 중 하나는 미국 Yale University와 제약회사 Arvinas 연구진이 진행한 ARV-471 연구다. 연구진은 유방암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에스트로겐 수용체를 표적으로 하는 PROTAC을 설계했다. 기존 치료제들은 이 수용체의 기능을 억제하는 데 집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암세포가 내성을 획득하는 경우가 많았다. 연구팀은 에스트로겐 수용체에 결합하는 분자와 E3 효소인 cereblon에 결합하는 분자를 연결한 PROTAC을 제작했다. 이후 암세포에 투여한 결과 수용체 단백질의 대부분이 실제로 분해되는 것이 확인되었다. 임상시험에서도 종양 성장 억제 효과가 관찰되면서 PROTAC이 실험실 기술을 넘어 실제 치료제로 발전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현재 PROTAC 연구는 암 치료뿐 아니라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헌팅턴병과 같은 신경퇴행 질환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질환은 비정상적인 단백질이 세포 안에 축적되는 것이 원인 중 하나인데 PROTAC을 이용하면 문제 단백질을 선택적으로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러 연구팀이 타우 단백질과 알파 시누클레인을 표적으로 하는 PROTAC 후보 물질을 개발하고 있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PROTAC이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을 만든 것이 아니라 세포가 원래 가지고 있던 단백질 분해 과정을 활용했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유비퀴틴-프로테아좀 시스템의 원리를 이해한 뒤 이를 질병 치료에 응용했다. 이는 생명과학의 기초 연구가 실제 의약 기술로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며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될 가능성이 있다.
[위즈덤 네이처]생화학은 세포 속에서 일어나는 화학 반응과 생명 현상을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에너지로 전환되거나, DNA 속 정보가 단백질로 만들어지는 과정, 효소가 반응 속도를 바꾸는 원리까지 모두 생화학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생명 현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단백질의 접힘, ATP의 역할, 효소 촉매 작용, 유전자 발현, 혈당 조절, 세포막 신호전달 같은 주제를 다룰 예정입니다.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사례와 연결해 생화학의 개념을 위즈덤 아고라 우성훈 기자의 ‘위즈덤 네이처’에서 만나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