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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감자’ 태국 총선, 민심의 선택은?

< 출처=EPA 연합뉴스 >

[객원 에디터 5기 /전종환 기자] 이번 총선은 2014년 쿠데타 이후 두 번째이자 2020년 대규모 민주화 시위 이후 첫 번째 치러진 총선이었다. 태국 국민의 정치적 열망이 터져 나오는 무대가 됐다. 군부를 확실히 몰아내려면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아직 많다. 변화는 이제 막 시작됐다.

  • 국 총리에 도전하는 피타 림짜른랏

태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피타 림짜른랏(42)’ 전진당(MFP) 대표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 한국 대기업의 방콕 주재원 친구는 ‘자신도 참정권이 있다면 한 표 던지고 싶다”라고 한다.

  • 피타의 배경

태국 정치는 20여 년간 군부와 재벌가인 탁신 가문과의 대결이었다. 그런데 혜성처럼 나타난 개혁정치인이 총선에서 1당을 차지했다. 그는 특이한 스펙을 가지고 있다. 싱글대디에, 태국 민주화의 상징 탐마삿대학을 졸업하고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정책학 석사, 매사추세츠공대(MIT) 슬론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대신해 쌀겨기름 회사를 크게 성장시켰고, 메릴린치와 보스턴 컨설팅 그룹에서도 일했었다.

  • 외신의 평가

특히 외신들은 그의 ‘대화나 논쟁을 하는 태도’를 높이 평가한다. 상대를 존중하면서 부드럽게, 하지만 확신에 찬 눈빛으로 반박합니다. 무엇보다 방향성을 잃지 않다. 태국이라는 나라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지 강하게 확신하는 것 같은데, 태국 국민들은 이번 총선에서 그 방향이 맞다고 도장을 찍어줬다.

  • 피타의 방향성

그 방향은 ‘군주제를 개혁하고, 군이 지배하는 태국 정치를 바꾸겠다’는 것입니다. 왕실모독제를 폐지하고, 군인은 제대 후 7년 동안은 정치를 못 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을 처벌하기 어렵게 만든 현행 헌법도 고치겠다고 했다.

  • 승리의 깃발이 코 앞

‘군부 대 반군부’ 구도가 그 어느 때보다 선명했던 이번 총선에서 군부가 압도적으로 패배했다는 사실만큼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군부 계열 팔랑쁘라차랏당(PPRP)과 루엄타이쌍찻당(RTSC)은 각각 41석과 36석에 그쳤다. 민심은 지난 9년간의 군부 집권기에 싸늘한 심판을 내렸다. 쿠데타로 집권한 쁘라윳 짠오차 현 총리는 사실상 ‘정계 은퇴’ 수순에 접어들 전망이다.

  •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다만 전진당과 민주 진영이 아직 승리를 만끽하기엔 이르다. 여건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의원내각제를 따르는 태국에서는 연립정부를 어떻게 구성하느냐, 총리가 누가 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군부가 심어놓은 함정이 여기에 있다. 총리가 되려면 상원(250석)과 하원(500석)을 합쳐 과반인 376석 이상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상원은 군부가 지명한 이들로 채워져 있다. 하원에서 전진당과 프아타이당을 합친 293석으로는 턱없이 모자란다. 결국 연정과 군부 회유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지난 5월 22일 전진당은 프아타이당 등 다른 7개 정당과의 연합을 구성했다. 이들은 이날 모두 23개 항목으로 구성된 양해각서(MOU)를 발표했다. 향후 연정을 꾸리는 일에 뜻을 모으기로 했다. 이로써 전진당은 하원 500석 중 313석을 확보했다. 총리 당선을 위한 ‘매직넘버’인 376석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간 셈이다.

  • 간판 공약의 영향

양해각서에서 전진당의 간판 공약이었던 ‘왕실모독죄(형법 제112조) 개정’은 생략됐다. 태국 형법 제112조에 규정된 일명 왕실모독죄는 왕실 구성원·왕가의 업적을 모독하거나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경우 최고 징역 15년에 처하도록 한다. 학생들을 비롯한 민주 진영은 오래도록 이 법의 개정 혹은 폐지를 주장해왔다. 전진당은 이번 총선에서 유일하게 제112조 개정을 약속한 당이었다. 하지만 프아타이당을 비롯한 다른 당이 왕실모독죄를 건드리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는 분석이 많았다. 결국 전진당이 집권 및 정부 구성을 최우선 목표로 하면서 이를 나중으로 미룬 것으로 보인다. 피타 대표는 “전진당은 단독으로 의회에서 왕실모독죄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향후 태국

앞으로 군부와 왕실이 진보 세력의 선전에 어떻게 반응할지도 미지수다. 군부가 다시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하긴 하나, 쿠데타는 군부로서도 치러야 할 비용이 크다. 쿠데타가 성공하려면 왕실의 묵인 내지는 비호가 필요한데, 현 국왕은 국민 사이에서 그다지 신망이 두텁지 않다. 특히 옆나라 미얀마가 쿠데타 이후 2년 넘게 사실상 내전 상태에 빠져 있는 점을 감안하면, 군부로서는 더 쉬운 선택지를 노릴 수도 있다. 예를 들어 2020년 헌법재판소를 통해 퓨처포워드당을 해산했듯, 사법제도와 소송 등으로 탄압에 나서는 방법이 가능하다.

당장은 전진당이 상원을 회유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방콕포스트 등 현지 언론은 상원의원 몇몇이 피타 대표 지지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전했다. 전진당 내부에서도 ‘유권자의 뜻’을 내세워 상원 설득이 가능하리라는 관측이 흘러나왔다. 상원은 그러나 기본적으로 보수 왕당파로 구성돼 있다는 점에서 섣불리 희망에 기대기는 어렵다. 피타 대표도 “전진당은 정부 구성에 관해 상원의원들과 회담하고 있다. 낙관적이긴 하지만 몇몇 장애물이 존재한다”라고 인정했다.

국민의 뜻이 표심으로 분명하게 드러났는데도 여전히 군부 세력이 민주화의 키를 잡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이 대목에서 태국 청년활동가 네띠윗 초띠팟파이산(27)이 최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한 말을 인용한다. “태국 국민은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 태국 군부와 상원이 꼭 새겨들어야 할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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